◆ 비운의 전함 '바사호'
한 인간의 집념은 발틱해에 가라 앉은 333년전의 '바사호'를 인양해 내는 쾌거를 이룩했다. 바사호는 배를 만 들도록 지시했던 왕과 이를 인양했던 한 해양학도의 집념처럼 박물관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역사의 그림자 속에 서로를 알고 있는 것처럼....
안데스 프란첸! 그는 스웨덴의 해양고고학을 전공했던 한 학생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 나 그는 어느날 우연히 강의시간에 출항한 직후 발틱해로 가라 앉아버린 바사호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바사호'를 건져내야 겠다는 대망의 결심을 한다. 그의 집요한 집념은 드디어 바 사호가 침몰한지 333년만에 인양하는 쾌거를 이룬다.
우리는 초콜릿 축제 현장 에서 나와 한 사나이의 집념의 결정체로 인양된 바사호를 보기 위해 바사호 박물관으로 발길을 돌렸다. 바사호의 아름다움에 대한 이 야기는 여행책자에서 익히 그 정보를 얻은바 있었지만, 그 보다 어느날 우연히 인터넷에서 읽었던 바사호의 침몰과 인양에 대한 스토 리는 나에게 진한 감동을 주었다.
스웨덴의 바사왕조 시대에 절대권력을 휘두르던 왕의 지시로 만들어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전함이 그 처녀출항식 날, 왕이 지켜보 는 가운데 침몰해 버리는 참담한 비운... 그리고 300년이 지나도록 발틱해의 심연에 묻혀있는 그 비운의 바사호를 한 고고학 학생에 집념에 의하여 인양되어 다시 그 모습을 드러내는 쾌거... 극과 극을 달리는 바사호에 얽힌 스토리는 나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 다.
나는 다소 흥분된 마음으로 바사호 박물관으로 향했다. 코펜하겐에서 베르겐으로 가는 기차를 타고 갈 때 만났던 스웨덴 대학생의 말 을 되새기면서... " 스톡홀름에 가거든 바사호 박물관을 꼭 들러 보세요!"
박물관 입구로 들어가니 거대한 전함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박물관의 내부는 어두었다. 마치 배가 333년동안 같혀있던 발틱해의 심연처럼... 그 어둠속에서 4 백여 년 전에 만 들어진 배는 금방 진수된 배처럼 거대한 선체가 드러났다.
우리는 선채 전체가 흠집이 없고 매우 정 교함에 놀랄 수밖에 없었 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배를 만들라는 왕의 지시대로 바사호는 믿기지 않을 만큼 하나의 조각처럼 정교 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장식들의 하나하나가 매우 아름다웠다.
"세상에! 이런 배도 있었군요!" "여기에 오기를 잘했지?"
그러나... 바사호는 그 아 름다움 만큼이나 짧은 생명을 간직한 비운을 가지고 있다. 바사호 박물관은 노르웨이 오슬로에 있는 프람호 박물관과 쌍벽을 이루는 세계적인 선박 박물관이다. 오슬로에 있는 프람호가 노르웨이의 탐험가 난센과 아문센이 북극과 남극을 탐험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 다면, 스톡홀름의 바사호는 독일과의 30년 전쟁에 참전하기 위해 진 수되어 출항식 날 침몰해버린 비운을 간직한 전함이다.
스웨덴이 북방에서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제국을 이루었던 시기는 바사왕조시대였다. 그 당시 절대 왕권을 휘두르던 '북방의 사자 왕'이 란 칭호 를 가지고 있었던 구스타프 2세는 주변의 강대국이었던 덴마크, 러시아, 폴란드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발틱해를 평정했다.
그는 보다 강력한 국력을 표방하는 심볼이 필요했다. 그 심볼이 바로 이 바사호를 만드는 것이었다. 왕은 스웨덴의 국력을 과시하기 위 하여 세계에서 가장 성능이 우수하고 아름다운 배를 만들 것을 명령했다.
왕의 명령으로 가능한 모든 기술과 원료를 동원, 총력을 다해 건조를 시작한지 3년 만에 완성된 바사호는 진수식과 더불어 독일과의 '30년 전쟁'에 투입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 다. 무게 1300톤, 선채의 길이 47.7미터로 64문의 대포를 탑재하고 있는 바사호는 당 시 세계 최대의 목제 전함이었다.
드디어 1628년 8월 10일, 바사호가 처녀출항을 하는 날이 왔다. 스톡홀름 항구에는 바사호의 출항을 구경하기 위해 수많은 시민들로 가득 메 워졌다. 물론 대망을 품은 스웨덴의 국왕 구스타프2세도 상기된 얼굴을 하고 출항식에 참여했다. 그러나 예포를 쏘며 출항한 배는 불 과 몇 미터도 가기 전에 선채가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불행하게도 배는 100미터도 가기 전에 발틱해의 심연 속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100미터도 가기전에...
배에 탔던 선원 150명과 해군 300명도 바사호와 함께 바다 속에서 운명 을 함께하는 비운을 맞이해야 했다. 전쟁을 한번도 치루기전에 장렬(?)하게 전사하는 비운의 젊은 목숨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 사호는 그렇게 생명을 다하는 듯했다.
배가 가라앉게 된 주요 원인은 너무 많이 탑재한 대포와 포탄의 무게 때문이었다고 한다. 만약에 이 배가 가라앉지 않았더라면, 이 배의 포탄으로 인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었을까? 선체의 측면에 2중데크로 열려있는 포문을 바라보며 순간 나는 포탄이 날아가는 듯한 전률을 느꼈다. 그런 의미에서 신은 공평한지도 모른다.
배가 가라앉은 뒤, 깊은 심연의 바다에서 대포는 일부 건져 낼 수 있었으나, 거대한 전함은 당시의 기술로는 도저히 예인을 할 수가 없었다. 바사호는 300년이 넘도록 발틱해에 미이라 처럼 잠들어 버린 체 세인들의 관심밖에서 벗어나 역사속의 하나의 전설로만 그 스토리가 전해내려오게 되었다.
그런데 수백 년이 지난 후 해양고고학을 전공하던 안데스 프란첸(Anders Franzen:1918-1993)이란 한 학생이 바사호의 비운에 대한 전설같은 강의를 수업시간에 듣게된다. 강의를 들으면서 그는 그 배를 기어이 예인하겠다는 원대한 꿈을 품게 된다.
한 학생의 불굴의 집념은 마침내 바사호가 침몰한지 333년만인 1961년에 인양하게 되는 쾌거를 이룩하게 되었다. 놀랍게도 예인된 선 체는 원형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이는 배 전체가 매우 단단한 참나무로 건조 된데다, 발틱해는 소금 끼가 적어서 나무를 갉아먹는 박테리아가 서식을 할 수 없 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렇게 한 인간의 집요한 집념으로 인양된 배는 20년 동안의 보수를 끝내고, 새롭게 탄생하여 1990 년 7층으로 된 현재의 '바사호 박물관'에 보관되어 세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결국 당초 건조 할때 왕이 그렇게도 염원했던대로 세상에서 가장 아 름다운 전함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
“이건, 배가 아니라 하나의 조각같은 예술품이 야!” “그러게 말 이예요. 저 황금빛 나는 화려한 조각이 너무 아름답군요!”
바사호는 정말 하나의 조각품이다! 인간의 집념! 만든 자와 발견한 자의 마음이 지금 이곳에 함께 모여 있었다.
그러나 지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배를 만들도록 지시한 구스타 프 왕도, 전설 같은 배를 인양하겠다는 대망을 품었던 안데스 프란첸이란 학생도 이제 세상을 떠 나고 없다. 허지만 마치 이 두 인간 의 강한 의지를 보여주듯 바사호는 황금빛으로 반짝거리며 중세기의 선박 미술사를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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